옷이 자꾸 행거 밖으로 흘러내려서 장롱 하나 사려고 중고거래 앱을 보고 있었음.

그러다 사진부터 묵직한 원목 장롱이 [무료나눔 / 오늘 가져가실 분]으로 올라옴.

새 제품이면 80만원은 해 보였고 판매자도 "문짝 멀쩡하고 서랍도 잘 열려요"라고 함.

공짜라는 두 글자에 정신이 마비돼서 크기부터 재야 한다는 기본 상식을 통째로 잊음.

판매자 집이 15분 거리라 1톤 용달을 6만원에 예약하고 친구 한 명까지 불렀음.

현장에서 보니까 사진보다 훨씬 컸지만 기사님이 "이 정도면 세워서 가면 됩니다"라고 해서 셋이 낑낑대며 실음.

판매자 아주머니는 장롱이 차에 올라가는 순간 문을 닫으며 "반품은 안 돼요~"라고 웃으셨는데, 그 웃음의 의미를 우리만 몰랐음.

큰 원목 장롱이 좁은 아파트 계단 코너에 끼인 창작 재현 사진
▲ 3층과 4층 사이에서 우리 집 가구가 아니라 공용 계단 시설물이 된 장롱

우리 집은 엘리베이터 없는 4층이라 계단으로 올리기 시작함.

2층까지는 욕하면서도 올라갔는데 3층 코너에서 장롱 윗부분이 천장에 닿고 아랫부분은 난간에 걸림.

왼쪽으로 돌리면 벽, 오른쪽으로 돌리면 소화전, 눕히면 계단 폭보다 12cm가 길었음.

셋이서 20분 동안 테트리스 하다가 장롱 옆면으로 벽지에 80cm짜리 갈색 줄까지 그어놓음 ㅋㅋㅋㅋ

🤣 찐반응: 무료나눔 물건 가격: 0원 / 그 물건이 우리 집에 들어오는지 확인하지 않은 사람의 가격: 무한대

기사님이 결국 사다리차를 알아보자고 했는데 업체에 전화하니 최소 12만원이었음.

공짜 장롱 때문에 18만원을 쓰는 게 억울했지만 이미 용달 6만원을 냈고 장롱은 계단에 끼어서 이웃들이 옆으로 기어 다니고 있었음.

업체에서 베란다 사진을 보내달라길래 찍어 보냈더니 "장롱 폭이 창문보다 커서 사다리차로 올려도 못 들어갑니다"라고 전화로 사망 선고함.

아파트 밖에 다시 내려놓은 큰 원목 장롱과 용달차 창작 재현 사진
▲ 집 구경 0초 만에 다시 지상으로 복귀한 무료 장롱과 6만원짜리 왕복 여행

다시 계단으로 내려오다가 문짝 하나를 분리했는데 경첩 나사가 뭉개져서 재조립도 안 됨.

원래 판매자한테 연락했더니 채팅방은 이미 나가고 글도 삭제됨 ㅋㅋㅋㅋㅋ

아파트 앞에 둘 수도 없어서 구청 대형폐기물 신고하고 1만원 스티커까지 붙임. 용달 6만원, 친구 밥 2만원, 벽지 보수 10만원, 폐기비 1만원. 공짜 장롱 한 번 만져보고 총 19만원 증발.

저녁에 빈 방으로 돌아와 원래 쓰던 3만원짜리 철제 행거를 다시 세웠음.

옷은 여전히 밖으로 흘러내렸지만 최소한 계단을 봉쇄하진 않았다. 친구는 밥 먹으면서 다음에 무료 피아노 뜨면 꼭 자기를 다시 부르라고 했고, 나는 그날 계산한 19만원 송금 내역을 보여주며 우정을 종료하겠다고 함.

그날 배운 무료나눔의 진짜 뜻은 물건값이 무료라는 거지 운반비, 인건비, 벽지값, 폐기비까지 무료라는 뜻이 아니었음. 다음부터는 채팅 첫마디로 가로세로높이부터 묻는다 ㅋㅋㅋㅋㅋ